공지사항 및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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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io | 2010/12/31 23:59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12)
본격 광고 포스팅: 정치학 강독 모임

후마니타스에서 준비 중인 책을 중심으로 강독 모임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은 번역 완고가 들어와 있는 다음 책으로 시작합니다.

1, 데이비드 헬드(박찬표 옮김) [민주주의의 10가지 모델 (가제) - Models of Democracy 3판]
2. 만프레드 슈미트 (최재한/이선희 옮김) [독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기능하는가(가제)  
3. 로버트 달 (김순영 옮김)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가제)]
4. 뭉크, 슈나이더 (독자번역자팀 옮김)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 비교정치학자 15명의 열정과 직업의식(가제)]

일시 : 1월 9일 토요일 개강 (매주 토요일 3시 - 6시)
장소 : 후마니타스 (약도 참조)
참가비 : 월 4만원 (책이 출간되면 수강자에게 증정)
신청 및 문의 : 덧글이나(여기에), 박상훈 (parsh0305@gmail.com)

참고로,
[민주주의의 10개 모델] 목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3판 서문
서론

제1부 고전적 모델들

제1장. 고전적 민주주의 : 아테네
정치적 이상과 목표
제도적 특징
고대 민주주의의 배타성
비판
요약 : 모델 1
제2장. 공화주의 : 자유, 자치 그리고 적극적 시민
정치적 동물(homo politicus)의 쇠락과 재등장
공화주의의 개조
공화주의, 선출된 정부 그리고 인민주권
시민적 생활로부터 시민적 명예로
요약 : 모델 IIa
공화국과 일반의지
요약 : 모델 IIb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제3장. 자유민주주의의 전개 : 국가에 대한 지지와 반대
권력과 주권
시민권과 입헌국가
권력 분립
파벌의 문제
책임과 시장
요약 모델 IIIa  
자유와 민주주의의 전개
전제 권력과 과대성장 국가의 위험
대의정부
여성의 예속
‘정부의 여러 목적’에 대한 경쟁적 개념들
요약 : 모델 IIIb
제4장. 직접민주주의와 정치의 종식
계급과 계급갈등
진보로서의 역사와 자본주의 발전
국가에 관한 두 이론
정치의 종언-파리코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쟁적 개념들
요약 : 모델 Ⅳ

제2부 20세기 이후의 변형

제5장 경쟁적 엘리트주의와 기술관료적 비전
계급, 권력 그리고 갈등
관료제, 의회 그리고 국민국가
경쟁적 엘리트주의적 민주주의
기로에 선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흔적?
민주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고전적’ 민주주의 대 현대 민주주의
기술관료적 전망
요약 : 모델Ⅴ
제6장 다원주의, 기업 자본주의 그리고 국가
집단정치, 정부 그리고 권력
정치, 합의 그리고 권력분포
민주주의, 기업 자본주의 그리고 국가
요약 : 모델 Ⅵ
축적, 정당화 그리고 제한된 정치영역
대의제도의 형태 변화
제7장 전후의 안정에서 정치적 위기로 : 정치적 이상의 양극화
정통성 있는 민주적 질서인가 억압적 정체인가 ?
과부하된 국가인가 정당화의 위기인가?
위기이론 : 평가
법,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요약 : 모델 Ⅶ
참여,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요약 : 모델 Ⅷ
제8장. 소비에트 공산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역사적 배경
경제적․정치적 자유주의의 승리인가 ?   
마르크스주의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의 새로운 필요성  
제9장. 숙의 민주주의와 공공영역의 옹호
이성과 참여
민주주의 이론의 한계
숙의 민주주의의 목표
올바른 공적 논증이란 무엇인가? 불편부당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
숙의 민주주의 제도
가치 다원주의와 민주주의
요약: 모델 IX 

제3부 오늘날 민주주의의 의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제10장. 민주적 자치
민주주의의 매력
자치의 원칙
원칙의 실행
고전적 및 20세기 민주주의 이론의 유산
민주주의 : 양면의 과정
요약 : 모델 Xa
민주적 자치 : 양립 가능한 점과 양립 불가능한 점
제11장. 민주주의, 국민국가, 전지구적 체제
민주적 정통성과 국경
지역적․전세계적 흐름 : 과거와 현재의 비교
주권, 자치 그리고 괴리
보다 전지구적인 시대에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함 : 세계시민 민주주의
요약 : 모델 Xb 
유토피아적 기획 ? 

훌륭하신 정치학자 박상훈 선생님께서 강독을 하시니 정치학에 관심있으신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라고 쓰고 불우출판사를 도웁시다...라고 읽습니다.
위의 말은 농담이고, 작년 겨울에도 후마니타스에서 정치학 고전 강독(당시에는 E.E. 샤츠슈나이더의『절반의 인민주권』을 강독하였습니다)을 한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s. 오시는 길

by socio | 2009/12/02 17:15 | 정치 | 트랙백 | 덧글(4)
2009년 연세대학교 47대 총학생회 선거 결과

 지난 2주간의 선거운동 끝에 치루어진 47대 총학생회 선거는 <you>선본(정후보 정다혜(사학 04), 부후보 권지웅(기계 07))이 3189표를 얻어 31.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체대에서 <신바람 연세> 선본이 253표 중 223표를 획득하는 공산당 선거에 가까운 득표율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역시 결과는 변화가 없었다. 일단 총론적 차원에서 말해보자면 전임 메리트와 비운동권 메리트를 지니고 있던 <36.5 Con-Action> 선본이 16.98%의 득표율로 패배한 것은 후보의 자질 부족과 정책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권이냐 비권이냐 보다는 정책을 보고 판단하는 합리적 투표를 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책은 역시 부실하였지만 후보자가 가장 학생들과의 스킨십을 많이 시도하였던 <신바람 연세> 선본의 16.02% 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에서 후보자의 노력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전혀 현실성이 없는 공약과 학생들에게 낯선 생태주의를 내건 <Ecoco> 선본의 컬트적 인기-자그마치 '잉여대통령' 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는 '잉여' 로 대표되는 20대의 자조적 유희문화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었고, 최악의 선본 중 하나였던 <연세V> 선본의 약진은 여전히 운동권에 대한 비토세력 및 선심성 공약에 현혹되는 학생층이 존재함을 증명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당선 선본 및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정치관(부정적인 의미에서)을 보여주었던 선본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를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본인의 총학생회관(觀)부터 밝혀두는 것이 도리일 듯 싶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본인은 복지와 학내 거버넌스 수립에 주력하는 비권 총학생회를 총학생회의 모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상 '비권' 과 '운동권' 을 나누는 것 자체가 반(反)운동적이고 반정치적인 프레임에 말려드는 오류를 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학외의 조직적 운동세력을 등에 엎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이해를 하면 될 것이다. 본인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투입역량을 강화하여 그들의 의견을 대의하는 데에 주력해야지 외부로부터 주어진 선험적 비전에 학생들을 동원하려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는 총학생회가 할 일이 아니라 각 정당의 학생위원회에서 할 일이다. 정치적 갈등에 기반한 진영적 대표는 각각의 계급이나 신념에 의거하여 이루어져야지, 학교 단위로 될 수는 없기에 대학의 총학생회가 상위정치(High politics)의 영역에서 정치적 대표성을 지닐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총학생회의 임무는 복지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학내 거버넌스를 수립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수월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만약 총학생회가 정치적 행보를 보인다면 그것은 정치참여를 원하는 학생들의 투입에 의한 것이 되어야지, 지사(志士)처럼 총학생회가 미온적인 학생들을 끌고 나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어긋난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지난 2년간 총학생회를 연임하였던 36.5 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학내복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 때 총학생회가 보여주었던 움직임은 비권총학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편향적에 갇히지 않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선거에 6개의 선본이 나오며 경쟁이 심화되고 총학선거가 정치적 유효성을 획득한 것은 36.5 의 가장 큰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36.5 의 유능한 일처리 덕분에 학생들이 정치를 통하여 자신들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총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UIC 에서 <You> 에 대한 높은 득표율이 나온 것은 송도 캠퍼스 이전 문제에 대해 총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투표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2년간 나름대로 훌륭한 일처리를 통해 36.5 가 열어준 정치의 공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선본과, 가장 위험하게 생각했던 선본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을 해보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여기저기서 들은 뒷이야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글에서는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문은 소개하되 판단은 소문에 근거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정보를 위주로 하여 간략하게 의견을 말하도록 하겠다. 또한 본인은 현재 학교의 실정과 운영방식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공약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선본이 선거기간 중 제시하였던 전체적인 비전을 위주로 의견을 말할 것임을 밝혀둔다.

당선 선본: <You>

<You> 선본의 인터뷰는 여기에서
정책자료집은 여기에서
공약평가는 여기에서

 <You> 선본은 민노당 학생위원회가 주축이 된 부자학교펀드감시단과 교육공동행동 2만마일 출신의 후보들을 내세우고 있다. 후보들의 경력을 보면 충분히 유추 가능하지만, 이들의 조직기반은 NL계열의 한대련이다. 항상 무시못할 조직력을 자랑하는 NL 답게 선거운동에 동원한 조직역량을 보면 왜 PD가 NL에게 안되나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들의 조직기반을 빌미로 선거기간 내내 '운동권' 이라는 네거티브 공세가 활발하였고 앞으로 재임 중에도 이러한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NL 세력과 학생운동에 대해 극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어느정도 방어를 해줄 필요성을 느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운동권' 대 '비운동권' 이라는 프레임은 한국사회의 냉전반공주의가 낳은 극히 허구적인 프레임이다. 2006년도 NL 총학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운동권 선본에 대한 이미지가 극히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관점이 간과하는 점은 2007년도 비권 총학의 실정은 단지 최종우라는 개인의 미숙으로 돌려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조직적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관점이 일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권 총학의 조직기반에 대한 관심 자체가 운동권 총학의 조직기반에 대한 관심보다 적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 역시 상기해야겠다.

 결국 '운동권' 과 '비운동권' 이라는 프레임은 '좌파적' 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운동(movement)이라는 개념은 사전적으로만 보자면 좌파운동과 우파운동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운동권' 이라는 혐의는 전적으로 좌파 혹은 민족주의 계열의 진영에만 따라붙게 된다. 따라서 단순히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선택에서 배제하는 것은 냉전반공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투항이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뉴라이트 계열의 운동권인 <연세 V>에 대한 비토여론이 <You>에 대한 비토여론보다 높지 않았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게다가 당선됐을 때 민노당 선배들이 와서 축하해준 것 가지고도 말이 많은데, 학생운동의 끈끈한 선후배 관계 및 대학원에 있는 민노당 출신 학생들의 수를 생각해보자면 이는 결코 이상한 일도 아닐뿐더러, <연세 V> 선본은 선거기간 중에 외부인사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중도 앞에서 모여 기도를 하는 패악질-성시화 운동의 악몽이 떠오른다-을 저질렀건만 이에 대한 여론은 민노당에 대한 반감보다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조직의 연속성 차원에서 2006년 총학의 실정의 연속성을 우려한다는 점은 합리적인 비토 이유지만, 그렇다면 이들이 2006년도 총학과 이념적 단절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당선된 <You> 선본은 이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정치를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우선 You 선본의 현재 기조 자체는 상당히 훌륭하다는 점을 말해두어야겠다. 구체적인 현실과 공약 실행의 방법론, 그리고 단계론적 목표까지 제시해놓은 정책자료집은 그것의 실현가능성과는 별개로, 성실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특히 타 선본들이 결여하고 있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있고, 학생사회의 거버넌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는 점(물론 이들도 자생적 공동체에 대한 지원 외에, 공식적인 조직들과 거버넌스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해야 할 것이다)에서 총학생회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직기반을 판단에서 배제한다면 이번 총학선거는 You 선본이 당선될 것이 확실해 보일 정도이다. 문제는 이들의 조직기반이며, 이는 운동권에 대한 편견과는 별개로 나름의 근거를 지니고 있는 우려라는 점이다.

 고려대학교의 올해 총학생회(역시 한대련 계열이다)가 한대련 가입 문제로 단과대 학생회와 빚었던 마찰을 상기한다면 한대련을 조직기반으로 가지고 있는 총학생회가 당선될 경우 이들이 한대련과 맺게 될 관계는 상당히 우려스럽다. 이들은 분명히 조직기반이 한대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를 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 한대련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집권 후 총학생회로서 취할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명시를 해주었어야 한다. 대(對) 정부 수준까지 기획되어 있는 이들의 공약실천 방법론은 필연적으로 학교 외부의 세력들과 어떠한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따라서 You 선본은 타 조직과의 연대의 기준과 방식을 명시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갑자기 학생복지를 위해서라며 민노당이나 한대련 조직을 끌어들이거나 복지를 뛰어넘어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민족대축전을 강행한다고 하면 곤란해진다.

 또한 이들은 학생사회의 결사체와 공동체들의 역할을 강조함에도 그것이 선언적 성격에 그치고 있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동원도구로서 활용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도 있다. 고학번들은 잘 알겠지만, 반이나 과 학생회야 말로 미시적 차원에서 활동가들을 재생산 하는 통로이다. 이들의 36.5 전 총학에 대한 비판은 반정치적인 <파랑, 사랑> 선본의 그것과 과 달리 거버넌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자신들 역시 학생 개개인과의 접촉을 강조하는 구조적 포퓰리즘을 뛰어넘어 어떠한 거버넌스를 수립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결여되어 있기에('입체적' 구조라는 좋은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들이 이끌어가는 총학 체제에서 하위 공동체들의 위치가 감이 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You> 선본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았을때는 다소 미숙한 부분이 있음에도 타 선본에 비해 상당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로 인해 집권에 성공하였지만, 자신의 조직기반과의 불명료한 관계로 인해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물론 정책자료집 등 공식적인 모습은 기존의 이념편향적 운동권과 단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노무현 시기의 실정에 대한 성찰은 하지 않은 채 인적 연속성을 지니고 국민참여당을 주장하는 친노세력의 모습이 연상되어 꺼림직하다. 압도적 인기를 누렸던 부후보 권지웅 씨의 실제 정치적 역량도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다만 공대에서의 압도적 지지를 생각해볼때 과 회장으로서의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불확실한 기대에 자신들의 열정을 걸었고, 그것을 믿어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으로 당선자들과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정후보 정다혜씨와 함께 수업을 들으며 받은 인상은 똑똑하고 멋진 분이라는 점이라 그 단편적 인상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쪼록 오랜만에 보는 운동권 총학인만큼 1년간 학생사회를 잘 이끌어 좋은 결과를 내고 학내에서 운동권에 대한 근거없는 적대감을 씻어내는 데에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가장 위험했던 선본: <파랑, 사랑>
<파랑, 사랑> 선본의 인터뷰는 여기에서 
정책자료집은 여기에서
공약평가는 여기에서

 <파랑, 사랑> 선본(이하 '파랑')은 미술동아리 '화우회' 와 봉사동아리 출신 후보들을 내세우고 있다. 우선 노현정을 닮은 부후보이유경씨의 미모 덕분에 인지도는 꽤나 얻었던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딱히 이렇다할 만한 돌풍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고 총 6개 선본 중 5위를 차지하는 데에 그쳤다. 그리고 본인은 이유경씨의 독보적 미모를 인정함에도, 이러한 결과가 연세대 학생사회를 위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선본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한마디로 말해 가장 위험한 친구들이라는 점이다. 최소한 공식적으로 확인 가능한 선에서는 봉사동아리와 화우회 외의 또 다른 조직기반은 찾지 못하였지만, 사실 뉴라이트 계열 선본인 <연세 V> 보다 훨씬 강한 뉴라이트적 경향성을 읽어낼 수 있는 선본이 파랑 선본이다.

 인터뷰와 정책자료집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이들은 지난 36.5 총학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이며 비권과 운동권 모두에게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부정적이라는 점 자체가 아니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이들은 36.5 총학의 활동에 대해 과도하게 복지편향적이라는 비판을 가하며, 비권과 운동권의 권력정치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연세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리더십의 회복을 내세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반 정치적이며 그나마 미약하게 존재하고 있는 학생사회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본인에게 있어서 좋은 민주주의는 산출(output)이 아니라 투입(input)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민주주의가 좋은 이유는 투입을 통해서 수호자주의나 권위주의 등의 다른 정치체제에 비해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로버트 달이 훌륭하게 논증한 바가 있다). 하지만 파랑 선본은 학생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발적 결사체와 의사결정 기구들의 의견을 어떻게 학정운영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한 정치적 결사체들을 부정적으로 보며 '연세인' 이라는 일원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자신들이 연세인들이 잃어버린 꿈을 직접 찾아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제 3섹터 활동에 대한 비전에 연세인들이 복무할 것을 요청하는, 투입의 통로를 제약하고 있는 행위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학생참관인 제도는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단과대나 반 학생회라는 거버넌스를 거치지 않은 채 '연세인' 이라는 단일한 질로 환원되는 개개인들과 총학이라는 최고 기구가 직접 소통할 것을 주문한다는 점에서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행하는 구조적 포퓰리즘의 혐의를 씌울 수 있다.

 또한 봉사와 자선을 강조하는 이들의 모습은 지난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온정적 보수주의를 연상시킨다. 최장집 교수가 올바르게 지적하였다시피 온정주의는 약자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수혜가 강자의 일방적인 시혜에 의존하는 위계적, 권위주의적, 가부장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강자에게는 스스로가 좋은 일을 했다는 도덕적 보상감을, 약자에게는 물질적 혜택만큼이나 큰 심리적인 열등감을 부여함으로써 강자에 대한 약자의 의존적 사회관계를 지속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인간 가치의 평등함과 자율성에 의한 자기 존중 내지 자긍심은 존재하지 어렵다. 인류의 정신사에서 자유주의와 낭만주의 사상이 기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자율적 가치를 사회적 질서, 정치적 질서의 중심에 위치시켰다는 데 있다. 하지만 파랑 선본은 연세인의 이성과 자유를 말하면서도 이러한 점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봉사를 외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복지와 권력을 부정시하는 이들의 자세는 정말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정책자료집에 싣려있는 정후보의 인터뷰에서 정후보는 복지를 강조하는 경향에 대해 '단순히 개인의 편의만을 위한 욕구의 대변자' 라고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경향은 시민적 덕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혹은 미국 보수파의 공동체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일반 학생이나 시민의 물질적 욕구를 부정시하고 물질적 필요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산층 편향성을 강화하는 나쁜 효과를 가진다.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있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샤츠슈나이더의 일침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란 기본적으로 권력이라는 악마와 손을 잡는 행위라는 막스 베버의 말을 상기한다면, 성과에 의존하여 권력게임을 벌이는 이들의 경쟁을 죄악시 하는 이들의 자세는 지극히 반민주적이고 반정치적이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민주주의란 슘페터적인 극히 최소주의적인 정의에 따르더라도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정치세력간의 경쟁을 전제로 하며, 이들의 경쟁은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와 비전을 기반으로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쟁을 '냉혹한 정치논리' 로 부정시하며 성과에 기반한 권력형성을 '순수' 하지 않다며 부정시하는 것은 전문가들에 의한 관리와 일원적인 동원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관의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력이 개입될 수 밖에 없으며, 중요한 것은 권력을 선용하는 문제이지 정치에서 권력을 거세하는 문제가 아니다. 후자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상층편향적인 권력구조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내세우는 연세대학교라는 비전은 학내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갈등을 대변할 수도 없고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을 대변할 수도 없는, 아무런 구체적 내용없이 교내에 존재하는 여러 갈등들을 윽박으로 덮어버리기 위한 허상에 불과하다.

 파랑 선본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요약하자면, 이들의 정치관은 갈등을 부정시하고 온정주의에 경도된 중산층 우파 판타지에 기반한 신보수주의적인 정치관이며, 이러한 정치관은 학생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갈등들을 제대로 봉합하거나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학생사회를 파탄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이 제발 내년 선거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정책자료집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부후보 이유경씨는 들러리의 인상이 강하고 정후보 김한균씨가 선본 결성 및 그 노선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 같은데, 그냥 <연세V> 의 후보들과 손잡고 빨리 졸업하시기를 권고드리고 싶다.

p.s. 서울대 총학생회의 경우 거의 이승만 시기 수준의 선거부정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학내 정치세력들의 반응도 점임가경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모쪼록 서울대도 문제가 잘 해결되어 좋은 총학생회가 선출되고 내년 학생사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by socio | 2009/12/01 02:15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8)
본격 4대강의 하이테크 비밀


2분 14초 경부터 문제의 물고기형 로봇이 등장합니다.
물고기형 로봇을 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조.
by socio | 2009/11/28 11:56 | 망상과 불평 | 트랙백 | 덧글(8)
'88만원 세대' 론의 실증적 허구성: 세대착취는 실재하는가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 담론으로 대표되는 세대담론은 외환위기 이후의 청년실업난과 새로운 풍속도를 해석하는 영향력 있는 틀로 자리잡았다. 이는 기존의 고전적인 맑스주의 계급도식이나 몰계급적인 자유주의의 원자론을 모두 우회하며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지만 과연 '88만원 세대' 론 의 핵심적 기제인 세대착취 가설이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검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경제적 차원에서 세대착취 가설이 기각된다면 '88만원 세대' 론에서 남는 것은 20대 풍속도에 대한 속류적 해석과 껍데기만 가진 혁명적 정조 외에는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비판사회학회에서 출간하는 진보적 성향의 학술지인『경제와 사회』2009년 봄호(제 81호)에서 심층적으로 다룬 바가 있으며, 그 결론은 '88만원 세대' 론은 현실을 정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학술적 담론으로 취급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 중 앞에서 말하였던, '88만원 세대' 론의 중추인 세대착취 가설에 대한 가장 위력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의 "세대, 계급과 불평등" 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신광영 교수는 한국노동연구원이 전국에서 5,000 가구를 추출하여 1998년에 수집한 1차 노동임금패널 자료부터 2007년 제 10차 노동임금패널 자료까지 10년 기간의 자료를 분석하고 각 연령 코호트의 근로소득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료분석을 통하여 전체 소득 불평등 내에서 세대 간 불평등(between cohort)과 세대 내 불평등(within cohort)이 차지하는 비중을 밝힘으로써 세대착취 가설에 대한 실증적 검증을 시도한다. 논문에서 다루는 소득 불평등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개인의 월소득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근로소득 불평등이며,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세대 간의 소득격차 발생에 중요한 요인인 취업여부와 취업형태 문제를 반영하기 위해 근로소득이 없는 경우도 포함하여 분석을 실행하고 있다.

 분석에 사용된 범주는 세대, 계급과 취업형태(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부)이며 각각의 범주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세대는 1998년 1차 노동패널자료의 경우 20세 이하, 21~30세, 31~40세, 41~50세, 51~60세, 60 세 이상으로 6개의 연령 코호트로 구분하며, 1998년 응답자의 9년후 상태를 다루는 2007년 10차 노동패널자료는 20세 이하, 21~29세, 30~39세, 40~49세, 50~59세, 60세 이상으로 구분한다. 계급은 종사상 지위와 직업을 이용하여 비임금 취득자 중 피고용자 5명 이상을 고용하는 경우를 자본가, 0~4명의 피고용자를 고용하는 경우를 쁘띠부르주아로 구분하며 경영·관리직·전문직·기술직에 종사하는 경우는 중간계급, 사무직·판매서비스직·생산직에 종사하는 경우를 노동계급으로, 즉 자본가, 쁘띠부르주아,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4계급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노동패널자료의 종사상 지위에서 상용직만을 정규직으로, 그 외의 임시직과 일용직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였다.

 분석의 구체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논문에서는 전체 소득 불평등 내에서 세대 간 불평등과 세대 내 불평등의 비중을 분석하기 위해서 전체 불평등을 세대별로 분해한 후, 널리 사용되는 소득 불평등 지수인 타일 지수(Theil Index)를 사용하여 세대의 효과를 분석한다. 타일 지수는 불평등을 하위 집단으로 분해하는데 용이하다는 점에서 하위 집단 간 불평등 지수 측정과 분해에 자주 사용된다. 타일 지수의 최대값은 1이며 값이 클수록 불평등이 높다. 예컨대 모든 개인들의 소득이 동일할 때의 지수의 값은 0이 되며, 1인이 모든 소득을 차지했을 때의 지수의 값은 1이 된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분석결과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료 및 분석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운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선 모든 국가에서 연령이 높아지면 승진이나 경력에 따른 소득 증가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다음의 자료 및 분석결과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림 1> 은 1998년과 2007년 월평균 소득과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표준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자료를 보면 21~30 세의 월평균 소득은 20세 이하와 61세 이상의 월평균 소득보다는 크지만, 30~50대의 월평균 소득의 65~70% 수준에 불과하다. 1998년 20대의 월평균 소득 수준은 30~50대의 월평균 소득의 76~78%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20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임극격차가 크게 증가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60 세 이상의 월평균 소득 역시 1998년 30~50대 소득의 55% 내외에서 2007년 45~50%로 크게 감소하였다. 이와 별개로 세대 내 근로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표준편차를 살펴보면 1998년의 경우는 40대, 2007년에는 50대에서 근로소득 불평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에 제시되는 <표1>과 <표2> 는 각각 1998년과 2007년 연령 코호트와 근로소득 10분위 분포를 교차시킨 분석결과이다.

 두 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은 상위 20%의 점유율이 40대까지는 연령증가에 비례하여 증가하다가 50대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바뀐다는 점이다. 1998년 상위 20% 소득비율은 20대 7.3%, 30대 26%, 40대 26.6%로 증가하다가, 50대에 이르러 19.3%, 60대 이상의 경우 9.6%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며 이러한 양상은 2007년도에도 비슷한 추세로 나타난다. 즉, <표2>는 <표1>과 9년의 시간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9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두 표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차이점은 1998년에 비해서 2007년 20세 미만의 상대적인 소득계층이 크게 하락하였다는 점이다. 1998년 20세 이하의 경우 28.6%가 하위 20% 소득분위에 속했는데, 2007년 그 비율이 매우 크게 증가하여 62.7%에 달하였다. 이는 20세 이하의 절대 다수가 낮은 근로소득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20대의 경우 하위 20% 소득분위에 속하는 비율도 1998년 8.6%에서 2007년 18.6%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또한 60대 이상의 경우에도 하위 20% 소득분위에 속하는 비율이 같은 기간 동안 47.9%에서 59.4%로 증가하였다.

 <표1>에서 21~30세가 <표2>에서는 30~39세가 된다.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21~30세 가운데 상위 소득 40%에 속하는 비율은 29.4% 이었고, <표2>에서 30~39세의 상위 소득 40%에 속하는 비율은 55%로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서 상위소득의 비율이 확대되었다. 이것을 좀 더 분석해보면, 연령 코호트 가운데 상위 소득 40%에 속하는 비율이 <표1>에서는 31~40세 연령 코호트였고, <표2>에서도 55%에 달하여,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근로소득 상위에 속하는 연령 코호트가 여전히 40대임을 알 수 있다.

 <그림1>, <표1>과 <표2>는 근로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대강의 추세를 보여주지만, 그것은 정확한 내용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림1>은 평균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분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고 또한 각 세대의 인구 규모를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림1> 을 단순히 세대착취 가설을 입증해주는 지표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표2>와 <표3>은 분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으나, 각 분위 내의 소득분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대와 불평등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고 그것을 연령 코호트로 분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전체 불평등 정도의 추이를 살펴보고, 전체 불평등을 다시 세대 내 불평등(inequality within cohort)과 세대 간 불평등(inequality between cohort)으로 분해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의 <표 3> 은 앞에서 언급하였던, 불평등 분해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불평등 측정지수로서 타일지수를 사용하여 불평등을 세대 간과 세대 내 수로 분해한 결과이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1998년도 제 1차 노동패널자료에서 밝혀진 점은 전체 불평등 가운데 세대 간 불평등은 전체 불평등의 약 12%로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각 연령 코호트 내의 불평등에 의해서 나머지 88% 정도의 불평등이 설명된다는 사실이다. 세대 내 불평등에서는 40~49세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연령 코호트 내의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의 약 1/3 정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30대에서도 소득 불평등이 높아서, 다른 연령 코호트와 큰 차이를 보였다. 20대<30대<40대의 순으로 근로소득 불평등이 높아지다가 40대에서 정점을 이루고 그 이후 근로소득 불평등이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의 제 1차 자료와 2007년 제 10차 자료를 비교하면, 전체 불평등은 .2762에서 .3312로 20% 정도 증가하였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전반적인 불평등 심화 추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88만원 세대 '논의와는 달리, 2007년 세대 간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에 비해서 오히려 감소하였다. 2007년 전체 불평등에서 세대 간 불평등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전히 전체 불평등에서 세대 내 불평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컸고, 그중에서도 특히 40대 내의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점은 비록 20대와 30대나 40대와의 평균 근로소득 격차가 크지만, 각 세대 내에서의 격차가 대단히 커서 세대 간 격차를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표2>에서 하위 소득 20%를 구성하는 집단을 연령별로 본 결과와 일치한다. 즉, 하위소득 20%는 매우 다양한 연령 코호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세대에 비해서 20대만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대 간 전쟁이라고까지 표현된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실제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신광영 교수의 통계자료 분석을 통해 확인하였다. 세대 간 불평등은 실제로 그다지 크지 않고 오히려 9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으며, 세대 내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불평등 요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한 연령 코호트인 30대와 40대의 세대 내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현재의 세대착취 가설은 상당히 과장되고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88만원 세대' 론이 세대착취 가설의 경험적 근거로 내세우는 문제이자 20대의 문제로 언급되는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고용 문제에 대해 신광영 교수는 어떻게 이해할 것을 주장하는가. 우선 다음의 자료를 보도록 하자.

 실업률을 살펴보면, 20대의 실업률이 높아서 1998년 9.4%와 2007년 8.6%로 나타났다. 1998년 20세 미만의 실업률이 39.0%로 가장 높았지만, 20세 이상만을 고려할 때, 두 시기 모두 청년실업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1998년 20대였던 사람들의 경우 2007년에는 30대가 되었으며, 이들의 실업률은 3.4%로 낮아졌다. 이것은 외환위기 당시 20대의 실업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도 20대의 비정규직 비율이 1998년 13.7%였고, 2007년 13.1%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2007년에는 중간계급 비정규직 비율이 약간 줄고, 노동계급 비정규직 비율이 약간 높아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비율은 20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98년의 경우도 비정규직 비율은 20대보다 40~50대에서 훨씬 높았고, 2007년도에도 40대 이후의 비정규직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위의 자료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20대보다 오히려 다른 연령 코호트에서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4>와 9년의 시간차를 가지고 있는 <표5>의 연령 코호트 계급분포는 <표4>와 차이보다는 유사성을 더 많이 보여준다. 2007년 모든 연령 코호트에서 쁘띠부르주아의 비율이 1998년에 비해서 낮기는 하지만, 두 표에서 공통적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영업 비율이 높아진다. 중간계급 정규직이 20대와 30대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도 유사하다. 또한 20대에서 실업자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21~30세인 사람들, 즉 20대가 2007년 30~39세가 되면서 어떤 변화가 세대 수준에서 일어났는가? 먼저 정규직 비율이 약간 높아졌다. 1998년 20대에서 중간계급 정규직과 노동계급 정규직의 비율은 66.1%이었고, 2007년 30대에서 70.1%로 증가하였다. 특히 노동계급 정규직 비율은 1998년 32.2%에서 2007년 42.4%로 크게 증가하였다. 노동계급의 경우, 이것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고용형태가 변했기 때문이다. 반면,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비율은 약간의 감소를 보였다. 1998년 21~30세의 비정규직 비율은 13.7%이었다. 2007년 30~39세 비정규직 비율은 10%로 1998년 21~30세에 비해서 3.7% 감소하였다. 노동계급의 비정규직 비율은 20세 미만의 연령 코호트에서 35.8%로 가장 높았고, 20대에서 10.0%, 30대에서 8.0%로 줄어들다가 50대에서 17.7%로 높아졌으며, 60세 이상의 고령층에서는 무려 20.5%로 높게 나타났다. 이것은 비정규직, 고실업과 같은 문제가 ‘88만원세대’라 불리는 20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히려 청소년 세대보다 장년층과 고령층에서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88만원세대’ 인 20대의 경우, 다른 연령 코호트에 비해서 중간계급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대의 경우 학력이 높기 때문에 전문직, 경영·관리직, 기술직 종사자의 비중이 높아서 나타난 현상이다. 반면에 20대 비정규직 중간계급의 비율과 실업자의 비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서 높게 나타났다. 20대 중간계급 비정규직 비율은 6.3%로 연령 코호트 가운데 가장 높았고, 실업자의 비율도 9.4%로 대단히 높았다. 그러나 비정규직 비율과 실업자 비율을 합한 비율은 20대보다 50대와 60대에서 더 높았다. 이런 점에서 청년 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서 노동시장에서 어려움을 더 많이 겪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고 또한 청년 세대가 모두 동일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20대의 문제는 사교육을 통한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였고, 취업 준비로 4년 이상을 보냈는데, 정작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난을 겪으면서 생기는 소모적인 교육제도와 청년 실업자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경제위기 이후 20대만의 독특한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2>의 A와 B는 연령과 계급에 따른 월평균 소득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20대가 30대나 40대가 되는 경우,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소득궤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대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20대가 다른 연령 코호트에 비해서 불이익을 겪게 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경제활동 초기 과정의 저소득이 낮은 경력에서 생기는 문제라면 세대 그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이가 많아지면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양극화의 문제는 계급 간 불평등이 심해지고 때문이다. 계급에 따라서 소득 프로파일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생애 전 과정에서 경제적인 복지가 계급별로 크게 달라진다. 나이가 들수록 계급 간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기 때문에 생애과정으로서의 세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계급과 세대 간의 상호작용이 한국의 불평등 체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고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의 외부자인 비정규직의 경우는 연령 증가에 따른 소득증가분은 대단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2>에서 하단 부분은 중간계급 비정규직과 노동계급 비정규직의 월소득 추이를 보여준다. 두 가지 점에서 비교가 가능하다. 첫째는 계급효과로서 중간계급의 월소득이 노동계급의 월소득보다 높다는 점이다. 중간계급 정규직 월소득은 노동계급 정규직 월소득보다 높고, 중간계급 비정규직 월소득은 노동계급 비정규직 월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둘째는 노동시장의 내부자/외부자 효과로서 정규직 월소득이 비정규직 월소득에 비해서 높다는 점이다. 노동계급 정규직의 월소득과 중간계급 비정규직의 월소득을 비교하면, 노동계급 정규직의 월소득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동일한 비정규직 내에서는 중간계급의 월소득이 노동계급 월소득에 비해서 약간 높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비교하면, 계급효과는 사라진다. 이러한 추세는 1998년보다 2007년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비정규직 근로소득의 경우 계급위치에 관계없이 노동시장에서의 위치에 따라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계급과 무관하게 비정규직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외부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광영 교수가 논문을 통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88만원세대’라는 대중적인 담론을 통해서 외환위기 이후 현재 20대가 겪고 있는 취업과 고용상의 문제가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것은 이슈를 제기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한국의 불평등 문제나 고용문제가 전체 세대와 연관되어 있는 점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세대 문제는 전체 사회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불평등 체제의 구조화 과정과 관련된 문제이며, 개인의 전 생애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과 맞물려 이해되어야 한다. 노동패널 1차 자료와 10차 자료를 이용하여 타일지수(Theil Index)를 분석한 결과, 세대 간 불평등은 약화되었으며, 반면에 세대 내 불평들이 심화되어 전체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 내 불평등은 모든 세대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세대 내 불평등이 커지는 주된 이유는 계급에 따른 소득격차가 연령 증가와 함께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0대와 50대에서 세대 내 불평등이 대단히 컸다. 1998년 20대가 2007년 30대가 되었을 때, 세대 내 불평등이 크게 증가하였지만, 1998년 30대 내의 불평등에 비해서는 감소하였다. 이것은 20대에서 나타나는 여러 속성들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 증가에 따라서 새로운 패턴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20대만의 혹은 20대와 다른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20대 이후 세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40대 이후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업률은 20대에서 가장 높지만, 그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실업률은 낮아졌다. 그러나 20대 이후에도 비정규직 비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소득이 낮은 쁘띠부르주아 비율은 급격히 높아진다. 40대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비정규직, 쁘띠부르주아와 실업자 비율을 합하면, 40대 이후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에 달하고 있다. 40대 이후 계급간 월소득 격차가 확대되면서, 세대 내 계급에 따른 소득 불평등도 대폭적으로 증가한다. 이들은 동원할 수 있는 권력자원도 없고, 복지정책을 통한 국가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노동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결과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계급 간 소득격차가 더 커졌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계급 간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계급불평등은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 신광영 교수의 훌륭한 연구를 통해 '88만원 세대' 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물론 연구자 본인이 인정하듯 통계적 대표성을 유지하기 위해 성별 변수를 통제하지 않다 보니 가지는 연구의 한계가 있지만 그것이 본 연구의 타당성을 뒤엎을 수 있는 오류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다만 성별 변수를 통제하였을 시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결과로는 세대착취 가설의 부분적 타당성이 검증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정도가 있을 것이다. 즉, 20대 전체에 대해서는 세대착취 가설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20대 여성에 한해서는 적용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더 뚜렷한 통계자료가 나와 후속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글의 서두로 돌아가자면, '88만원 세대' 의 기반이 되었던 경제적 세대착취 가설은 실증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각되었다. 따라서 '88만원 세대' 에 남은 것은 20대에 대한 문화사 차원에서의 속류적 해석과 허울좋은 정치신학 정도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실증적 연구와 담론분석이 이루어져 있는 만큼 추후에 따로 글을 쓸 것이다. 물론 박권일은 세대론은 계급론의 정치적 우회전략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20대 비정규직과 윗세대 비정규직이 연대할 것을 주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세대론을 386 세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무기로 활용하는 우파와 20대 문화생산자론을 주장하고 있는 우석훈은 자신들의 세대론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올바른 지식인의 자세일 것이다.

p.s. 이 논문은 예전에 보았지만 최근 초록불 님의 블로그에서 우석훈을 둘러싼 논쟁 을 보고 요약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ghistory 님과 한운야랑 님의 논쟁에서 한운야랑 님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 것과는 달리 우석훈은 현재도 연세대에서 당당하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p.s.2. 본문에서 리플을 통해 오랫동안 댓글논쟁을 벌이던 BlueDot(http://BlueDot.egloos.com) 씨가 엄청난 수의 자신의 모든 리플을 삭제하는 만행을 저지른 관계로 댓글들이 맥락이 닿지 않는 부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대충 BlueDot 의 논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저 논문은 임금만 분석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소득의 결정적 요소는 자산소득이다.
-그런데 우석훈은 2006년도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부동산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한국 좌파들은 계급이야기만 하고 부동산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무능한 것들이다.
-2,30대는 집살 돈이 없어서 아이도 못낳고 결혼도 못하고 불쌍하게 사니 세대담론의 핵심은 자산소득이다.
-또한 대충 대기업과 공기업 신입 사원들의 수를 본 내 경험과 옛날의 석사 교수들을 생각해보면 세대착취 가설은 맞다.
-설령 저 논문이 맞다 하더라도 우석훈 비판하는 학자들은 재미도 없고 편협한 먹물들이다.
-먹물들은 서브프라임 경제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이미 이 시점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끊임없이 논점이 이동하고 있는데, 저 테제들이 모두 반박당하니 질적 전환을 시도합니다.

-계급이 세대보다 중요하면 1. PT와 중산층의 분류 기준을 말해라 2. 분류 이유를 말해라.
-왜 대답 안하고 레퍼런스만 제시하냐. 난 네가 계급에 대해 뭘 아는지 확인해야겠다.
-계급의 문제는 책상물림이 다룰 수 있는게 아니다. 왜 계급을 본문처럼 분류하냐.

그리고 저 시점에서 저는 다른 분들의 건의를 수용하여 계속 악의적 공격과 말꼬리 잡기를 위해 자신에 대한 반박에는 전혀 성실하게 대답을 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공격하는 논점만 이동시키는 BlueDot 씨의 댓글을 차단하였고, 차단하자마자 원래 달려있던 BlueDot 씨의 댓글이 모두 삭제가 되었습니다.

여튼 전후 맥락을 모르면 리플들이 뜬금없이 보일 수 있기에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일러두기의 차원에서 밝혀둡니다.
by socio | 2009/11/23 22:52 | 광대의사회학 | 트랙백(7) | 핑백(5) | 덧글(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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