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나 초자아가 하고 싶은 것을 알량한 권위나 완력을 앞세워 못하게 막는 것을 무조건 쓸어버리고 싶다는 개인적 이상은 있었을지 몰라도 이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되었건 그 무엇이 되었건 사회적 이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입고 다니는 사복에다가 공적 명찰을 달 때는, '저항' 하면 누구나 혁명을 떠올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곧 죽어도 혁명 좌파라는 명찰을 달고 다녔다."
아이추판다 님의 블로그에서 최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저명 논객 한윤형, 혁명적 좌파를 표방하는 떠오르는 샛별 홍명교 등이 참여한 대담을 보게 되었다. 아이추판다 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글을 통해 정신분석의 비과학적인 면에 대해 예리한 논평을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정신분석학은 진보적인가?" 라는 글을 통해 진보파(이 개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김대중-노무현파 및 좌파를 묶어서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의 정신분석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가지는 문제점과 정상과학에 대한 무지 및 적개심에 대해 지적을 해주셨다.
정신분석의 고가의 상담 비용을 근거로 하여 정신분석학 자체가 진보적 이론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임상 차원에서는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애초에 좌파가 병원간의 고가 의료장비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도 서민들의 의료접근권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현실의 임상 치료 비용이 비싸다고 하여 '이론' 으로서 정신분석학이 가지는 진보적 의미까지 자동적으로 기각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LSE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여 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적 학문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용문들을 통해 우선 정신분석학의 반(反)정상과학적 성향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간략하게 살핀 후, 정신분석학 이론의 역사적 유통 양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정신분석학 자체의 과학적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심리학 비전공자인 내가 논평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뿐더러, 인문학을 잉문학으로 만드는 자들에 대한 인문학을 통한 비판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하였기에 이러한 포스팅 방식을 택하였다. 노파심에 밝혀두자면, 나는 현재 유통되는 형태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질적 연구방법 및 심리철학의 유용성과 학문적 가치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전에 Dominic 님께서 "왜 파리 8대학 철학(들뢰즈, 지젝 등)은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가." 라는 글을 통해서 잉문학의 실태에 대해 밝혀주신 바가 있는 만큼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정치적-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프로이트의 이론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형태로 산출된 것이지, 프로이트가 정상과학의 개념과 실증적 검증을 거부하기 위해 무의식 개념을 제창한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정신분석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실제 정신의 작동을 분석하고자 하였던 프로이트의 문제의식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인용문에서 말하는 뉴에이지 신비주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을 다루지 않는 것과,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대상을 다루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도 천체물리학이 천국의 존재여부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고 한계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당대 유럽에서 '과학적 사회주의' 만이 비합리주의 철학의 물결에 초연하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오늘날 좌파가 정신분석학의 반과학주의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동시에 맑스를 소환하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 하다고 할 수 있다.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로 널리 알려진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인 페리 앤더슨의 서술이다. 정신분석학만을 겨냥해서 서술한 내용은 아니지만, 정신분석학은 앤더슨이 지적하는 유럽의 부르주아적 관념론에 포함되어 있다. 중략된 부분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알튀세가 정신분석학을 수용하였다는 언급을 하는데, 알튀세에 대해 "기만적인 수사" 를 이용한다고 논평한 것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는 정신분석학 자체의 특징적 문제라기 보다는, 실존주의나 헤겔 철학과 같은 여타 관념론적 사상들이 포함하고 있는 요소와 당시 서구 맑스주의의 정치적 패배가 결합되어 나타난 표현 양식이라고 간주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헤겔의 역사철학이 가지는 사이비 신학적 성격 역시 유사하게 공유하고 있기에 유사한 양식의 표현이 도출된다고 간주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헤겔+정신분석학이라는 최악의 조합을 주장하는 지젝이 좌파 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결합된 지젝을 위시한 라깡, 바디우 따위의 8대학 철학의 유행은 좌파의 정치적 패배와 좌절된 유토피아주의를 왜곡된 '부르주아적'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지젝을 비롯한 8대학 철학의 추종자들은 검증을 거부하며 자유주의자를 규탄하며 자신들의 급진성을 과시하는 실정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라캉에 대한 간략한 논평 및 정신분석학이 좌파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 사회적 맥락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정혜신의 대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은 '개인' 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상처와 치유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김대중-노무현파에 속하는 "한겨레" 에 등장하는 정혜신 뿐만 아니라 지젝과 같은 '급진적' 정신분석가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강조하는 지점은 다를지 몰라도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강조하지만, 욕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방법에 대해서는 극도로 나이브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이들이 보이는 행태는 그것이 '개량적' 이든 '급진적' 이든간에 현실의 정치적 목표를 진지하게 설정하고 추구하기보다는, 레이몽 아롱의 표현을 빌리자면 "억눌린 감정을 왕창 토해낸" "사이코드라마" 혹은 "언어 치매" 현상에 가까워 보인다. 1968년의 철없는 중산층 학생들과 히피들이 그러했듯이, 정신분석학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강조하며 짜증스러운 검증과 실천의 속박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반동적이다. 정신분석학을 수용한 좌파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이 친구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어내는 방법을 더 배워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포스트프로이트주의자들' 과 라깡의 정치적 지향점이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좌파 내에서는 이론적 맥락에 대한 세심한 구분이 없이 '불가해한 지식에 대한 열망' 에 따라 지식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급진적 좌파 내에서 라깡이 수용되는 것은 저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기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좌파 내에서 유통되는 정신분석학은 새로운 주체를 강조하면서 주체의 행동의 조건이자 제약이 되는 사회적 규정력에 대한 분석을 도외시하고 낭만적인 주체관을 지니고 있는데, 그렇다면 남는 것은 '결단' 뿐이다. 문제는, 직장폐쇄와 대운하 착공이라는 '결단' 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 맞서는 방법은 또 다른 '결단' 밖에 없게 된다는 점인데(그나마 호의적 조건으로 시민들이 다른 '결단'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지가 제공된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결국 강한 자의 결단이 이길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인간찬가는『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보아야 즐겁지 현실정치에서 보면 골치아프다. 이와 더불어 앞서 페리 앤더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좌파 이론의 언어적 오염은 특유의 모호함으로써 좌파를 역사유물론에 의해 주어지는 명확한 임무로부터 면제하여 문화라는 영역에 대해 검증받지 않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는데, 이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 이론이 실천을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사회현상에 대해 결코 지상에서 출발하지 않으며,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설명방식을 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용문들에 대한 짤막한 논평들을 정리하자면, 정신분석학의 좌파에의 유입은 결코 이론의 진보적 성격 때문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론의 부르주아적 성격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맑스주의 정치언어의 오염을 야기하였으며, 불가해성을 이론적 완성도의 척도로 여기게 만드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또한 정신분석학을 위시한 관념철학의 좌파이론에의 도입은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낳았으며, 그 중에서도 정신분석학의 도입은 기존의 좌파의 정치적 이상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며 주관적으로는 혁명적이지만 객관적으로는 반동적인 행태로 이어졌다. 결국 정신분석학이 급진적 상상력과 욕망을 포착함으로써 좌파 이론에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발상은 정상과학의 개념에 대한 합당한 과학철학적 비평과 이론적 정합성 및 설명력에 대한 포기를 혼동한 결과에 다름아니며, 현재 남한 좌파 내에서 정신분석이라는 유사학문에 근거한 잉문학적 사고방식이 마치 자연과학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인문학적 교양으로 포장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인식적 혼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가 현실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독단의 선잠 속에서나 꿈꿀 수 있는, 라깡과 지젝이 이야기하는 주체의 결단보다는 맑스주의적 정의이론을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분석 맑시스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편이 적절해보인다. 시민들은 정의에 대한 감각과 현실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밀교적 신념에 의거한 열정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에릭 홉스봄,『미완의 시대』, 민음사, 2007, p. 412-413
아이추판다 님의 블로그에서 최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저명 논객 한윤형, 혁명적 좌파를 표방하는 떠오르는 샛별 홍명교 등이 참여한 대담을 보게 되었다. 아이추판다 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글을 통해 정신분석의 비과학적인 면에 대해 예리한 논평을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정신분석학은 진보적인가?" 라는 글을 통해 진보파(이 개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김대중-노무현파 및 좌파를 묶어서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의 정신분석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가지는 문제점과 정상과학에 대한 무지 및 적개심에 대해 지적을 해주셨다.
정신분석의 고가의 상담 비용을 근거로 하여 정신분석학 자체가 진보적 이론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임상 차원에서는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애초에 좌파가 병원간의 고가 의료장비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도 서민들의 의료접근권 때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현실의 임상 치료 비용이 비싸다고 하여 '이론' 으로서 정신분석학이 가지는 진보적 의미까지 자동적으로 기각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LSE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여 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적 학문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용문들을 통해 우선 정신분석학의 반(反)정상과학적 성향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간략하게 살핀 후, 정신분석학 이론의 역사적 유통 양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정신분석학 자체의 과학적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심리학 비전공자인 내가 논평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뿐더러, 인문학을 잉문학으로 만드는 자들에 대한 인문학을 통한 비판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하였기에 이러한 포스팅 방식을 택하였다. 노파심에 밝혀두자면, 나는 현재 유통되는 형태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질적 연구방법 및 심리철학의 유용성과 학문적 가치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전에 Dominic 님께서 "왜 파리 8대학 철학(들뢰즈, 지젝 등)은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가." 라는 글을 통해서 잉문학의 실태에 대해 밝혀주신 바가 있는 만큼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정치적-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전문적인 사람이나 세련된 지식인들에 관한 한, 합리주의에 대한 최대의 공격은 정신분석학이론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자신에게는 합당하지 않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에서 이성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을 원했으며 그의 저작이 환자들에게 비합리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충동에 대한 지적 통제를 하게끔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데 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는 우리 행통의 태반이 우리가 체계적으로 의식하지 못한 욕망에 의해 충동된다고 주장하여 처음으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본성에 있어서 성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는 우리 자신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프로이트는 결코 무의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무의식의 작용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지난 세기에 걸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시인, 화가, 소설가 및 극작가들은 프로이트의 생각으로부터 모든 영감을 이끌어냈다. 어쨌든 정신분석운동은 한 집안을 분열시켰다.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성적 만족에 대한 충동보다는 권력에의 의지가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칼 융(Carl G. Jung)은 프로이트를 신봉하면서도 프로이트의 무신론과 젊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은 장래에도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신념에 내심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많은 뉴에이지(New age) 신비주의 뿐 아니라 중년의 위기와 같은 생각은 우리가 융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앨런 라이언(Alan Ryan), "전지구적 문화의 성장", 마이클 하워드·로저 루이스 외,『20세기의 역사』, 이산, 2000, p.123
그의 주장은 지난 세기에 걸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시인, 화가, 소설가 및 극작가들은 프로이트의 생각으로부터 모든 영감을 이끌어냈다. 어쨌든 정신분석운동은 한 집안을 분열시켰다.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성적 만족에 대한 충동보다는 권력에의 의지가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칼 융(Carl G. Jung)은 프로이트를 신봉하면서도 프로이트의 무신론과 젊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은 장래에도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신념에 내심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많은 뉴에이지(New age) 신비주의 뿐 아니라 중년의 위기와 같은 생각은 우리가 융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앨런 라이언(Alan Ryan), "전지구적 문화의 성장", 마이클 하워드·로저 루이스 외,『20세기의 역사』, 이산, 2000, p.123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프로이트의 이론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형태로 산출된 것이지, 프로이트가 정상과학의 개념과 실증적 검증을 거부하기 위해 무의식 개념을 제창한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정신분석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실제 정신의 작동을 분석하고자 하였던 프로이트의 문제의식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인용문에서 말하는 뉴에이지 신비주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을 다루지 않는 것과,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대상을 다루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도 천체물리학이 천국의 존재여부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고 한계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당대 유럽에서 '과학적 사회주의' 만이 비합리주의 철학의 물결에 초연하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오늘날 좌파가 정신분석학의 반과학주의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동시에 맑스를 소환하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 하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만들어낸 용어의 난해성은 독자인 프롤레타리아와 맺은 직접적이거나 적극적인 긴장관계에 의해서도결코 제어되지 않았다. 반대로 이론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어휘를 사용했다는 것은,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대중적 실천과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밀교화(esotericism)는 다양한 형태를 띠었다. 루카치는 복잡하고 난해한 표현을 쓰면서 형식주의에 함몰되었고, 그람시는 옥중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편적인 언급만 한 채 글을 끝맺곤 했다. 벤야민은 경구 스타일의 간결한 문체와 간접어법으로, 델라 볼페는 그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은 문장과 계속 반복되는 자기 참조로, 사르트르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조어를 계속 만들어냄으로써, 그리고 알튀세는 기만적인 수사 등을 남발하는 것으로 이런 밀교화에 앞장섰다.
......(중략)......
이런 장기간에 걸친 '이론과 실천의' 분리가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형태를 만들었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또 다른 흥미로운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대중실천 간의 정치적 통일성의 분열이, 이 둘을 연결시켜야 하는 긴장관계를 불가피하게 또 다른 한 축(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부르주아 이론 간의 긴장관계)으로 전위시켰기 때문이다. 혁명적 계급운동의 자극(磁極)이 부재한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전통적인 나침(羅針)은 점차 당대 부르주아 문화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다. 맑스주의 이론과 프롤레타리아 실천 간의 본래적 관계는 맑스주의 이론과 부르주아 이론 간의 새로운 관계로 은연중에, 그렇지만 꾸준하게 대체되어갔다. 물론 이런 관계 변화의 역사적 원인이 서구에서 대중적인 혁명투쟁이 패배했다는 현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진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사회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다는 것이 다소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 사회들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 문화적 양상 전반을 규정했다. 당시 공산주의 운동의 스탈린주의화와 더불어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은, 부르주아 사상의 주요 분야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략)......
따라서 하나의 공통된 전통으로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속적으로 유럽의 관념론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양자간의 상호관계는 항상 동화와 거부, 차용과 비판이라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 양자가 상대방에대해 정확히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는 사안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기본적인 양상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비슷했다.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 이매진, 2003, p. 111~115
......(중략)......
이런 장기간에 걸친 '이론과 실천의' 분리가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형태를 만들었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또 다른 흥미로운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대중실천 간의 정치적 통일성의 분열이, 이 둘을 연결시켜야 하는 긴장관계를 불가피하게 또 다른 한 축(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부르주아 이론 간의 긴장관계)으로 전위시켰기 때문이다. 혁명적 계급운동의 자극(磁極)이 부재한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전통적인 나침(羅針)은 점차 당대 부르주아 문화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다. 맑스주의 이론과 프롤레타리아 실천 간의 본래적 관계는 맑스주의 이론과 부르주아 이론 간의 새로운 관계로 은연중에, 그렇지만 꾸준하게 대체되어갔다. 물론 이런 관계 변화의 역사적 원인이 서구에서 대중적인 혁명투쟁이 패배했다는 현실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진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사회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다는 것이 다소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 사회들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 문화적 양상 전반을 규정했다. 당시 공산주의 운동의 스탈린주의화와 더불어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은, 부르주아 사상의 주요 분야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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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하나의 공통된 전통으로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속적으로 유럽의 관념론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양자간의 상호관계는 항상 동화와 거부, 차용과 비판이라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 양자가 상대방에대해 정확히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는 사안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기본적인 양상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비슷했다.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 이매진, 2003, p. 111~115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로 널리 알려진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인 페리 앤더슨의 서술이다. 정신분석학만을 겨냥해서 서술한 내용은 아니지만, 정신분석학은 앤더슨이 지적하는 유럽의 부르주아적 관념론에 포함되어 있다. 중략된 부분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알튀세가 정신분석학을 수용하였다는 언급을 하는데, 알튀세에 대해 "기만적인 수사" 를 이용한다고 논평한 것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는 정신분석학 자체의 특징적 문제라기 보다는, 실존주의나 헤겔 철학과 같은 여타 관념론적 사상들이 포함하고 있는 요소와 당시 서구 맑스주의의 정치적 패배가 결합되어 나타난 표현 양식이라고 간주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헤겔의 역사철학이 가지는 사이비 신학적 성격 역시 유사하게 공유하고 있기에 유사한 양식의 표현이 도출된다고 간주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헤겔+정신분석학이라는 최악의 조합을 주장하는 지젝이 좌파 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결합된 지젝을 위시한 라깡, 바디우 따위의 8대학 철학의 유행은 좌파의 정치적 패배와 좌절된 유토피아주의를 왜곡된 '부르주아적'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지젝을 비롯한 8대학 철학의 추종자들은 검증을 거부하며 자유주의자를 규탄하며 자신들의 급진성을 과시하는 실정이다.
푸코 자신은 '구조주의자' 라는 꼬리표를 맹세코 부인했는데, 이는 마치 알베르 까뮈가 언제나 자신은 '실존주의자' 였던 적이 없으며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진정 모른다고 주장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푸코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과거나 현재에 대한 명백히 전복적인 설명이라면 무엇이든 '구조주의' 였다. 그러한 설명에서는 관습적인 단선적 해석과 범주들이 효력을 상실했으며, 그 가정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주의자들' 이 인간사에서 개인과 개인의 창의성이 지니는 역할을 최소화하거나 심지어 부정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9)
그러나 그 변화무쌍한 함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구조를 지녔다(structured)' 는 관념은 다방면에 지극히 중요한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았다. 페르낭 브로델이나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심지어 미셸 푸코에게도 목적은 문화 체계의 심층 작용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은 학문적으로 전복적인 충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브로델의 경우에는 분명 아니었다- 변화와 이행을 숨기거나 최소화한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특히 결정적인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연구 방식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테면 사건이 특정한 단계에서 왜 변해야만 했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변했는지, 개별 사회적 행위자들이 그 과정을 촉진시키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이 제거된 구조들을 나열하여 인간 경험을 해석하는 모든 이론은 그 자체의 가정 때문에 난처하게 되었다. 지적으로 전복적인 구조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수동적이었다.
9) 이 경우에 인기 있는 심리분석 이론가인 자크 라캉이 그 범주에 포함되어야 했다는 것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라캉은 특별한 경우였다. 라캉은 60년대 파리의 느슨한 표준으로도 의학과 생물학, 신경학에서 이루어진 당대의 발전에 무지했다. 그런데도 영업과 명성에 이렇다 할 만한 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중략)......
1965년 무렵부터 자칭 '신' 좌파는 새로운 전거를 구했다. 그리고 청년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 즉 1840년대 초의 형이상학적 논문과 초고에서 그 전거를 찾았다. 그때 마르크스는 막 10대를 벗어난 나이로 헤겔 철학의 역사주의와 근원적 자유라는 낭만주의적 꿈에 흠뻑 젖은 젊은 독일 철학자였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 저작들의 일부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1848년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마르크스는 초기 저작들에서 단호하게 돌아서서 정치 경제와 당대의 정치를 연구했고 그때 이후로는 오로지 여기에만 전념했다.
따라서 초기 마르크스의 많은 저작은 학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초기 저작들은 1932년에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연구소의 후원으로 처음으로 완간되었을 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초기 저작, 그중에서도 주로『경제철학 초고 Ekonomische-philosophische』와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에 관한 관심은 30년 후에나 부활했다. 갑자기 전통적인 서구 좌파의 더럽고 무거운 짐을 내버리고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일이 가능해졌다. 청년 마르크스는 현저하게 현대적인 문제들에 몰두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소외된' 의식을 바꿔서 인간을 자신의 진정한 조건과 능력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 자본주의 사회의 우선순위를 역전시키고 인간을 자기 존재의 중심에 두는 방법, 간단히 말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몰두해 있었다.
......(중략)......
공산당과 다른 보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문주의적인 이 새로운 마르크스가 현대의 취향과 유행에 아주 쉽게 적용될 수 있음을 정확히 내다보았다. 마르크스와 같은 19세기 초 낭만주의자가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인간성을 빼앗는 산업 사회의 충격에 맞서 제기했던 불평은 탈산업 사회의 서유럽 현대인들이 '억압적 관용' 에 맞서 보인 저항에 매우 적합했다. 번영하는 자유주의적 서구의 일견 무한했던 유연성, 즉 스펀지처럼 열정과 차이를 흡수하는 능력은 비판자들을 격분시켰다. 비판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억압은 부르주아 사회에 고유한 특성이었다. 억압은 진정으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거리에서 없어진 억압은 분명 '어디론가' 옮겨갔음에 틀림없었다. 억압은 사람들의 영혼 속으로, 그리고 특히 그들의 신체 속으로 이전되었다.
......(중략)......
그러나 성과 정치의 융합은 당혹스럽기는 해도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했다. 실제로 집단 투쟁보다 개인의 욕구를 강조한 것은 객관적으로 반동적이었다. 고통을 감수하며 이를 지적한 공산주의자 지식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좌파의 마르크스 해석이 갖는 진정으로 전복적인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성적 해방에 대한 논의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침실과강의실, 작업장에서 자치를 요구했던 젊은 세대의 반권위주의적 미학도 대수롭지 않았다. 아마 경솔하게도 이 모두를 자연 질서의 일시적인 교란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공격은 마르크스 이론을 외국의 혁명적 실천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청년 과격파의 새로운 경향이었다. 그 세계에서는 기존의 범주와 권위는 어느 것도 적용될 수 없었다.
토니 주트(Tony Judt), 『포스트워 1945~2005』, 플래닛, 2008, p. 655~663
그러나 그 변화무쌍한 함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구조를 지녔다(structured)' 는 관념은 다방면에 지극히 중요한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았다. 페르낭 브로델이나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심지어 미셸 푸코에게도 목적은 문화 체계의 심층 작용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은 학문적으로 전복적인 충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브로델의 경우에는 분명 아니었다- 변화와 이행을 숨기거나 최소화한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특히 결정적인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연구 방식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테면 사건이 특정한 단계에서 왜 변해야만 했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변했는지, 개별 사회적 행위자들이 그 과정을 촉진시키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이 제거된 구조들을 나열하여 인간 경험을 해석하는 모든 이론은 그 자체의 가정 때문에 난처하게 되었다. 지적으로 전복적인 구조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수동적이었다.
9) 이 경우에 인기 있는 심리분석 이론가인 자크 라캉이 그 범주에 포함되어야 했다는 것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라캉은 특별한 경우였다. 라캉은 60년대 파리의 느슨한 표준으로도 의학과 생물학, 신경학에서 이루어진 당대의 발전에 무지했다. 그런데도 영업과 명성에 이렇다 할 만한 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중략)......
1965년 무렵부터 자칭 '신' 좌파는 새로운 전거를 구했다. 그리고 청년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 즉 1840년대 초의 형이상학적 논문과 초고에서 그 전거를 찾았다. 그때 마르크스는 막 10대를 벗어난 나이로 헤겔 철학의 역사주의와 근원적 자유라는 낭만주의적 꿈에 흠뻑 젖은 젊은 독일 철학자였다. 마르크스 자신은 이 저작들의 일부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1848년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직후 마르크스는 초기 저작들에서 단호하게 돌아서서 정치 경제와 당대의 정치를 연구했고 그때 이후로는 오로지 여기에만 전념했다.
따라서 초기 마르크스의 많은 저작은 학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초기 저작들은 1932년에 모스크바의 마르크스엥겔스연구소의 후원으로 처음으로 완간되었을 때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초기 저작, 그중에서도 주로『경제철학 초고 Ekonomische-philosophische』와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에 관한 관심은 30년 후에나 부활했다. 갑자기 전통적인 서구 좌파의 더럽고 무거운 짐을 내버리고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일이 가능해졌다. 청년 마르크스는 현저하게 현대적인 문제들에 몰두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소외된' 의식을 바꿔서 인간을 자신의 진정한 조건과 능력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 자본주의 사회의 우선순위를 역전시키고 인간을 자기 존재의 중심에 두는 방법, 간단히 말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몰두해 있었다.
......(중략)......
공산당과 다른 보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문주의적인 이 새로운 마르크스가 현대의 취향과 유행에 아주 쉽게 적용될 수 있음을 정확히 내다보았다. 마르크스와 같은 19세기 초 낭만주의자가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인간성을 빼앗는 산업 사회의 충격에 맞서 제기했던 불평은 탈산업 사회의 서유럽 현대인들이 '억압적 관용' 에 맞서 보인 저항에 매우 적합했다. 번영하는 자유주의적 서구의 일견 무한했던 유연성, 즉 스펀지처럼 열정과 차이를 흡수하는 능력은 비판자들을 격분시켰다. 비판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억압은 부르주아 사회에 고유한 특성이었다. 억압은 진정으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거리에서 없어진 억압은 분명 '어디론가' 옮겨갔음에 틀림없었다. 억압은 사람들의 영혼 속으로, 그리고 특히 그들의 신체 속으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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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과 정치의 융합은 당혹스럽기는 해도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했다. 실제로 집단 투쟁보다 개인의 욕구를 강조한 것은 객관적으로 반동적이었다. 고통을 감수하며 이를 지적한 공산주의자 지식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좌파의 마르크스 해석이 갖는 진정으로 전복적인 의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성적 해방에 대한 논의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침실과강의실, 작업장에서 자치를 요구했던 젊은 세대의 반권위주의적 미학도 대수롭지 않았다. 아마 경솔하게도 이 모두를 자연 질서의 일시적인 교란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공격은 마르크스 이론을 외국의 혁명적 실천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청년 과격파의 새로운 경향이었다. 그 세계에서는 기존의 범주와 권위는 어느 것도 적용될 수 없었다.
토니 주트(Tony Judt), 『포스트워 1945~2005』, 플래닛, 2008, p. 655~663
위의 인용문에서는 라캉에 대한 간략한 논평 및 정신분석학이 좌파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 사회적 맥락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정혜신의 대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은 '개인' 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상처와 치유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김대중-노무현파에 속하는 "한겨레" 에 등장하는 정혜신 뿐만 아니라 지젝과 같은 '급진적' 정신분석가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강조하는 지점은 다를지 몰라도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강조하지만, 욕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방법에 대해서는 극도로 나이브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이들이 보이는 행태는 그것이 '개량적' 이든 '급진적' 이든간에 현실의 정치적 목표를 진지하게 설정하고 추구하기보다는, 레이몽 아롱의 표현을 빌리자면 "억눌린 감정을 왕창 토해낸" "사이코드라마" 혹은 "언어 치매" 현상에 가까워 보인다. 1968년의 철없는 중산층 학생들과 히피들이 그러했듯이, 정신분석학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강조하며 짜증스러운 검증과 실천의 속박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반동적이다. 정신분석학을 수용한 좌파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이 친구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어내는 방법을 더 배워야 한다"
70년대의 문화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향했다. 60년대에 인류학이 철학을 대신하여 근본 학문(Ur-discipline)의 자리를 차지했듯이, 이제는 심리학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60년대가 지나는 동안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 등이 자본가의 이해관계에 귀속되지 않기 위해 벌였던 투쟁의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 '허위의식' 이라는 개념을 널리 채택했다. 앞서 보았듯이 변형된 허위의식은 좌파 테러리즘의 핵심 전제가 되었다. 그러나 허위의식은 정치적 색채가 덜한 집단에서는 기이한 내세를 갖기도 했다. 자칭 '포스트프로이트주의자들(post-Freudians)' 이 마르크스주의적 배경을 갖는 언어를 프로이트의 주제에 적용시켜 이제 사회 계급들이 아니라 개인 주체들의 총합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이제 서유럽에서는 북아메리카에서 그랬듯이 해방 이론가들이 전면에 부상했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 주체를 사회적으로 강요된 속박이 아니라 스스로 원했던 환상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지의 성적 변형은, 다시 말해 사회적 억압과 성적 억압은 완전하게 통합되어 있다는 생각은 60년대 말의 몇몇 영역에서는 이미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제나 빌헬름 라이히는 개인의 해방을 통해 집단적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명백하게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라는 두 계보에 속했다. 반면 자크 라깡의 추종자들이나케이트 밀레트와 아니 르클레르크 같은 현대의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어떤 면에서는 야심이 작아 보이기도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더 큰 야심을 드러냈다. 이들은 전통적인 사회 혁명 계획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사회 혁명이 주로 남성이 남성을 위해 주도한 정치 운동이었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은 옳았다). 대신 한때 사회 혁명 계획의 토대였던 인간 주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하려고 했다.
......(중략)......
독일 철학이 파리의 사회 사상을 거쳐 대부분의 당대 독자들에게 친숙한 형식이었던 영국의 문화 비평으로 건너갔을 즈음이면, 원래 난해한 어휘들은 여전히 불명료했지만 어느 정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했으며 새로운 세대의 학생과 교사들은 그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팽창 일로에 있던 당대의 대학에 교직원으로 채용된 후배 교수들은 대부분 60년대에 졸업하고 그 시대의 방식과 논쟁으로 교육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전 10년간 유럽 대학들이 사회, 국가, 언어, 역사, 혁명 등 다양한 거대 이론에 열중해 있었다면, 다음 세대로 전해 내려온 것은 무엇보다 이론 그 자체에 대한 몰두였다. '문화 이론(Cultural Theory)' 이나 '일반 이론(General Theory)' 세미나가 몇 년 전까지 과격한 학문적 토론까지도 지배했던 전통적인 학문 영역을 대신했다. '난해함' 은 지적진지함의 척도가 되었다. 프랑스의 저술가 뤽 페리와 알랭 르노는 몽매에서 깨어나 '68년 사상' 의 유산에 관해 논평하면서 신랄한 결론을 내렸다. "60년대의 사상가들이 거둔 가장 큰 업적은 이해할 수 없음이 위대함의 징표라는 점을 청중에게 납득시킨 것이다".
라캉과 데리다처럼 새로이 대가가 된 이론가들은 대학의 기존 청중에게 언어의 변덕과 역설을 완전한 철학으로, 말하자면 텍스트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에 무한정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틀로 승격시켰다.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 같은 기관에서 새로운 이론주의(theoreticism)는 순조롭게 옛 이론주의와 뒤섞였다. 격세유전적으로 경제적 범주와 정치 제도들에 집착했던 마르크스주의도 그러한 집착으로부터 구제되어 문화 비평으로 거듭났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 부르주아를 마지못해 극복해야 하는 불편함은 이제 더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이 시기 문화 연구에서 영국의 주요 대변자였던 스튜어트 홀은 1976년 이렇게 표현했다. "'계급 전체의 소멸' 이라는 개념은 한 계급의 상이한 부분들과 층위들이 그들을 결정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어떻게 상이한 진로와 선택으로 내몰리는가라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세분된 그림으로 대체된다."
홀 자신은 훗날 자신의 연구소가 "한때 이러한 난해한 이론적 문제들에 과도하게 몰두해" 있었다고 시인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자아도취적 반계몽주의는 그 시대의 유행이었고, 이러한 유행의 일상 현실과의 괴리는 무의식중에 지적 전통의 고갈을 증거하고 있었다. 더구나 반계몽주의가 그 시기의 문화적 결핍을 보여주는 유일한 징후는 결코 아니었다.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번득였던 창의력도 자의식이 강한 예술로 퇴보했다. <파리는 우리 것이다>(1960>와 <수녀>(1966)을 만든 재치 있고 독창적이던 감독 자크 리베트는 1974년데 <셀린과 줄리는 뱃놀이 간다>를 감독했다. 프랑스 뉴웨이브 양식을 (무심결에) 모방한 줄거리도 없는 193분짜리 이 영화는 한 시대가 끝났다는 표시였다. 예술의 이론화가 예술을 대체하고 있었다.
토니 주트(Tony Judt), 『포스트워 1945~2005』, 플래닛, 2008, p. 788~793
이제 서유럽에서는 북아메리카에서 그랬듯이 해방 이론가들이 전면에 부상했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 주체를 사회적으로 강요된 속박이 아니라 스스로 원했던 환상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지의 성적 변형은, 다시 말해 사회적 억압과 성적 억압은 완전하게 통합되어 있다는 생각은 60년대 말의 몇몇 영역에서는 이미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르쿠제나 빌헬름 라이히는 개인의 해방을 통해 집단적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명백하게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라는 두 계보에 속했다. 반면 자크 라깡의 추종자들이나케이트 밀레트와 아니 르클레르크 같은 현대의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어떤 면에서는 야심이 작아 보이기도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더 큰 야심을 드러냈다. 이들은 전통적인 사회 혁명 계획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사회 혁명이 주로 남성이 남성을 위해 주도한 정치 운동이었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은 옳았다). 대신 한때 사회 혁명 계획의 토대였던 인간 주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하려고 했다.
......(중략)......
독일 철학이 파리의 사회 사상을 거쳐 대부분의 당대 독자들에게 친숙한 형식이었던 영국의 문화 비평으로 건너갔을 즈음이면, 원래 난해한 어휘들은 여전히 불명료했지만 어느 정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했으며 새로운 세대의 학생과 교사들은 그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팽창 일로에 있던 당대의 대학에 교직원으로 채용된 후배 교수들은 대부분 60년대에 졸업하고 그 시대의 방식과 논쟁으로 교육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전 10년간 유럽 대학들이 사회, 국가, 언어, 역사, 혁명 등 다양한 거대 이론에 열중해 있었다면, 다음 세대로 전해 내려온 것은 무엇보다 이론 그 자체에 대한 몰두였다. '문화 이론(Cultural Theory)' 이나 '일반 이론(General Theory)' 세미나가 몇 년 전까지 과격한 학문적 토론까지도 지배했던 전통적인 학문 영역을 대신했다. '난해함' 은 지적진지함의 척도가 되었다. 프랑스의 저술가 뤽 페리와 알랭 르노는 몽매에서 깨어나 '68년 사상' 의 유산에 관해 논평하면서 신랄한 결론을 내렸다. "60년대의 사상가들이 거둔 가장 큰 업적은 이해할 수 없음이 위대함의 징표라는 점을 청중에게 납득시킨 것이다".
라캉과 데리다처럼 새로이 대가가 된 이론가들은 대학의 기존 청중에게 언어의 변덕과 역설을 완전한 철학으로, 말하자면 텍스트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에 무한정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틀로 승격시켰다.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 같은 기관에서 새로운 이론주의(theoreticism)는 순조롭게 옛 이론주의와 뒤섞였다. 격세유전적으로 경제적 범주와 정치 제도들에 집착했던 마르크스주의도 그러한 집착으로부터 구제되어 문화 비평으로 거듭났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 부르주아를 마지못해 극복해야 하는 불편함은 이제 더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이 시기 문화 연구에서 영국의 주요 대변자였던 스튜어트 홀은 1976년 이렇게 표현했다. "'계급 전체의 소멸' 이라는 개념은 한 계급의 상이한 부분들과 층위들이 그들을 결정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어떻게 상이한 진로와 선택으로 내몰리는가라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세분된 그림으로 대체된다."
홀 자신은 훗날 자신의 연구소가 "한때 이러한 난해한 이론적 문제들에 과도하게 몰두해" 있었다고 시인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자아도취적 반계몽주의는 그 시대의 유행이었고, 이러한 유행의 일상 현실과의 괴리는 무의식중에 지적 전통의 고갈을 증거하고 있었다. 더구나 반계몽주의가 그 시기의 문화적 결핍을 보여주는 유일한 징후는 결코 아니었다.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번득였던 창의력도 자의식이 강한 예술로 퇴보했다. <파리는 우리 것이다>(1960>와 <수녀>(1966)을 만든 재치 있고 독창적이던 감독 자크 리베트는 1974년데 <셀린과 줄리는 뱃놀이 간다>를 감독했다. 프랑스 뉴웨이브 양식을 (무심결에) 모방한 줄거리도 없는 193분짜리 이 영화는 한 시대가 끝났다는 표시였다. 예술의 이론화가 예술을 대체하고 있었다.
토니 주트(Tony Judt), 『포스트워 1945~2005』, 플래닛, 2008, p. 788~793
흥미로운 점은 '포스트프로이트주의자들' 과 라깡의 정치적 지향점이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좌파 내에서는 이론적 맥락에 대한 세심한 구분이 없이 '불가해한 지식에 대한 열망' 에 따라 지식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급진적 좌파 내에서 라깡이 수용되는 것은 저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기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좌파 내에서 유통되는 정신분석학은 새로운 주체를 강조하면서 주체의 행동의 조건이자 제약이 되는 사회적 규정력에 대한 분석을 도외시하고 낭만적인 주체관을 지니고 있는데, 그렇다면 남는 것은 '결단' 뿐이다. 문제는, 직장폐쇄와 대운하 착공이라는 '결단' 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 맞서는 방법은 또 다른 '결단' 밖에 없게 된다는 점인데(그나마 호의적 조건으로 시민들이 다른 '결단'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지가 제공된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결국 강한 자의 결단이 이길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인간찬가는『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보아야 즐겁지 현실정치에서 보면 골치아프다. 이와 더불어 앞서 페리 앤더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좌파 이론의 언어적 오염은 특유의 모호함으로써 좌파를 역사유물론에 의해 주어지는 명확한 임무로부터 면제하여 문화라는 영역에 대해 검증받지 않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는데, 이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 이론이 실천을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사회현상에 대해 결코 지상에서 출발하지 않으며,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설명방식을 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용문들에 대한 짤막한 논평들을 정리하자면, 정신분석학의 좌파에의 유입은 결코 이론의 진보적 성격 때문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론의 부르주아적 성격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맑스주의 정치언어의 오염을 야기하였으며, 불가해성을 이론적 완성도의 척도로 여기게 만드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또한 정신분석학을 위시한 관념철학의 좌파이론에의 도입은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낳았으며, 그 중에서도 정신분석학의 도입은 기존의 좌파의 정치적 이상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며 주관적으로는 혁명적이지만 객관적으로는 반동적인 행태로 이어졌다. 결국 정신분석학이 급진적 상상력과 욕망을 포착함으로써 좌파 이론에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발상은 정상과학의 개념에 대한 합당한 과학철학적 비평과 이론적 정합성 및 설명력에 대한 포기를 혼동한 결과에 다름아니며, 현재 남한 좌파 내에서 정신분석이라는 유사학문에 근거한 잉문학적 사고방식이 마치 자연과학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인문학적 교양으로 포장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인식적 혼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가 현실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독단의 선잠 속에서나 꿈꿀 수 있는, 라깡과 지젝이 이야기하는 주체의 결단보다는 맑스주의적 정의이론을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분석 맑시스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편이 적절해보인다. 시민들은 정의에 대한 감각과 현실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밀교적 신념에 의거한 열정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덧글
라면사리 2011/06/07 04:11 #
라깡하니까 이글루스에 라깡좋아하시는 분 한분 계시죠.크르크르 2011/06/07 04:21 #
원래 라깡 류는 딱 문학비평에나 적용하면 좋은 도구입니다. 그걸 자꾸 현실과 접목하려고 하니 온갖 사단이 나는거죠.별빛수정 2011/06/07 04:38 #
'주류에 대한 반발심리'와 '진정한 대안'은 큰 차이가 있는 건데 둘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꽤 많더군요;;;페이비언™ 2011/06/07 04:51 #
정신분석을 시론적인 문제제기나 가설 정립 수준에서 철학적 메타포나 추상적 표상으로 사회비평에 접목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보긴 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자기완결적인 사회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순간 그냥 주술적 정치관을 신봉하는 낭만주의자들의 대책없는 환타지로 전락할 겁니다.건더기 2011/06/07 05:03 #
정혜신이 노무현 정부시절 양산해내신 글들을 보면 정신분석학에 호의적(적어도 당시엔)인 나조차도 이건 사이비다,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는데... 저기 들러리 서서 슨상님 말씀 경청하듯 대담을 양산해준 좌파들은 대체 뭔 생각으로 나간걸까.한윤형 2011/06/07 23:58 #
극좌파 나셨네요...또 나름 '극좌'는 까는 커뮨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그럼 쌍용자동차노조에 님은 뭘했고 '사이비'라는 정혜신은 뭘했나요? 대체 이딴 걸 얘기라고....건더기 2011/06/08 00:51 #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한윤형 2011/06/08 11:09 #
님이 얼척없는 소리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걸 못 알아듣지는 않으셨을텐데 말씀을 하셨으면 본인의 생각을 좀 더 명료하게 밝히시고 부연하셔서 '너희들이 그러면 안되지 않느냐.'고 주장을 하셔야지 이렇게 빠져나가시면 되나요?건더기 2011/06/08 23:00 #
아뇨. 정말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문의를 해보았고, 대강 '아, 이러저러한 이야기 겠구나.' 라고 유추하게 되었습니다.대공 2011/06/07 06:18 #
밀교;;학문적클린턴 2011/06/07 07:49 #
철학이랑 사회학 잘 모르는 공돌이인데 저런 얘기들이 도대체 뭔소린가 싶어서 텍스트를 몇 권 읽어봐도 이해가 안되더군요. 대신 제시하실만한 사회학 텍스트라든가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현재시제 2011/06/07 10:29 #
갑자기 이말년이 생각나네요. '고만해! 미친놈들아!!'카군 2011/06/07 11:59 #
갑자기 이말년이 생각나네요. '고만해! 미친놈들아!!' (2)확실히 마르크스주의의 밀교화나 정치언어의 오염이 지금 가져온 폐해를 보면 참 암담하죠. 이건 뭐 지들도 지가 하는 소리를 이해나 하는지 모르겠고;;; 토니 주트 선생도 생전에(아마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놓고 지젝을 "웃기지도 않는(Ridiculous)" 인간이라 깠는데, 격렬하게 공감합니다. 정말로.
ps. 으으, 요즘 자금사정이 개판이긴 한데 <포스트워>를 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중입니다. 단돈 5만원도 못 쓸 지경이라 어휴. 고로 이명박 정부는 무상도서제를 허하라~ 허하라~ llorz
한단인 2011/06/07 12:05 #
밀교;;(2)let go 2011/06/07 12:06 #
정혜신아주머니;;;;;;;;;;마도에 빠졌;;;;;;;;;Aydin 2011/06/07 12:08 #
잘 읽었습니다. 추천.언젠가 어떤 좌파 철학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경험상 철학과에는 특성상 좌파나 적어도 반우파적 경향을 보이는 교수분이 많더군요. 정치색을 잘 드러내시진 않는데 드러내신다면 말이죠), 이론-실천간 괴리 문제로 한번 같이 대화해 본 적이 있었죠. 근데 이미 너무 이론에만 몰두하시던지라.. 실천적 주제마저도 이론으로 매몰시켜 버리려는(그것도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경향을 보이시더군요. 물론 이분은 한국에 소개된 유행성 프랑스 철학이나 붙잡고 계시는 분은 아니셨습니다만, 오히려 이런 분마저 그러다 보니..
Allenait 2011/06/07 12:26 #
갑자기 이말년이 생각나네요. '고만해! 미친놈들아!!' (3)joyce 2011/06/07 19:00 #
앤더슨이 인용되고 있군요. (반가워서...)그렇지만 그 책의 정치적 결론은 (트로츠키적) 정치주의로의 복귀이지요.
이건 그가 비판하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관념론보다 더 허황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2011/06/07 19:46 #
비공개 덧글입니다.아이추판다 2011/06/15 2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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